잡학상식 / / 2023. 2. 21.

초콜릿을 사랑한남자 발렌타인데이에 잠들다

악마의 잼 누텔라

 

세계적인 초콜릿 기업 페레로의 역사와 대표 브랜드에 대해 알아봅니다.

 

페레로의 역사

이탈리아의 대표 초콜릿 기업이자, 세계 2위의 거대 초콜릿 기업인 페레로. 세계를 대표하는 회사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이 거대한 기업도 시작은 아주 작았다. 페레로의 시작은 피에트로 페레로와 아내 피에라가 운영하던 작은 제과점이었는데 이 제과점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작은 마을 알바에 위치해 있었다. 1942년의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여러 가지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과점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초콜릿 또한 그중 하나였다. 피에트로 페레로는 초콜릿을 구하지 못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때 피에몬테의 창고들에는 이탈리아의 수출제한에 걸려 납품되지 못한 헤이즐넛이 가득했는데 피에트로는 거기서 하나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피에몬테 지방의 전통 초콜릿인 잔두야를 떠올린 것이다. 그는 구운 헤이즐넛에 식물성 기름과 코코아버터, 코코아 파우더를 섞어 파스타 잔두야라는 독자메뉴를 개발한다. 그의 기지 덕분에 부족한 초콜릿 문제도 해결하고 남아도는 헤이즐넛도 처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잔두야는 빵 위에 올려진 형태로 판매되었는데 어린이들은 빵은 먹지 않고 그 위에 올려진 잔두야만을 먹었다. 그래서 1951년 피에트로는 파스타 잔두야의 스프레드 형태인 슈퍼 크레마를 출시한다. 흔히 악마의 잼이라고 불리는 누텔라의 원형이다. 현재의 누텔라의 인기를 생각해 보면 당시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슈퍼크레마의 대성공을 등에 업은 피에트로는 아들 미켈레와 함께 1946년 파스타 잔두야를 생산하는 첫 번째 공장을 차리고 본격적인 초콜릿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누텔라의 탄생

1963년 피에트로의 아들 미켈레 페레로는 고민에 빠졌다. 슈퍼크레마는 이탈리아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유럽을 상대로 판매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레시피를 수정하고 이름을 바꿨다. 그래서 누텔라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겨났다. 새로운 스프레드의 시작품이 1964년 4월에 알바의 공장을 출발했다. 미켈레의 고민 덕분이었을까 새로 출시된 누텔라는 엄청난 속도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누텔라는 출시당시부터 싸고 맛있는 음식으로 취급되었다. 그 당시 초콜릿 1kg은 파스타 잔두야 1kg 비용의 6배였다. 누텔라의 인기요인에는 이탈리아 식품점이 실시한 The Smiring이라는 마케팅도 한몫을 했다. 어린이들에게 1스푼의 누텔라를 바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였는데 이 서비스의 인기가 엄청났다. 매년 2월 5일은 세계누텔라의 날이다. 페레로에서 정식 지정한 것은 아니고 이탈리아에 살았던 누텔라의 열렬한 팬인 미국인 블로거 사라 로소의 아이디어였다. 그의 아이디어를 본 페레로그룹은 그날을 공식적인 날로 지정했다. 매년 2월 5일이 되면 세계의 사람들은 칼로리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누텔라를 즐긴다.

 

미켈레 페레로의 죽음

1997년 미켈레는 아들인 피에트로 페레로 주니어와 지오반니 페레로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은퇴한다. 그리고 2014년 포브스는 세계 부자 순위를 발표한다. 여기에 미켈레 페레로의 이름도 있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부호이자 세계를 대표하는 부자로 인정된 것이다. 포브스가 추정한 그의 순자산은 약 265억 달러에 달한다. 그리고 그 수치는 세계부자 순위 30위였다. 하지만 미켈레는 이 당시부터 지병을 앓고 있었다. 오랜 투병 끝에 2015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그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89세의 나이로 몬테카를로의 저택에서 숨졌다. 이탈리아의 대통령이었던 세르지오 마타렐라는 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혁신적인 제품과 끈기 있는 작업,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산업의 주요한 리더였다며 칭찬했다. 그의 장례식은 페레로 기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알바의 대성당에서 열렸다. 그의 인생은 항상 초콜릿과 함께였고, 죽는 순간까지도 초콜릿을 기념하는 날과 함께 했다. 이후 페레로 기업은 자전거사고로 사망한 페레로 주니어를 대신해 지오반니 페레로가 혼자 운영하다가 2017년 3월 30일 기나긴 가족경영을 끝내고 라포 시빌레티를 CEO로 선임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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